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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정이 꾸민 유작전>, 문화일보, 1995.10.24, 11면
『강국진 추모 전시회』 아내가 열어 화제
3년전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사별한 화가 남편을 위한 40대 미망인의 『사후 내조』가 미술계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헌신적인 내조는 60년대 이후 전위예술의 미술사적 자리매김 차원에서 단연 눈길을 끌고 있다. 한성대 교수를 역임했던 중견 서양화가 고 강국진씨(1939~1992)와 그의 부인 황양자씨(47)가 주인공이다. 황씨는 남편을 위한 3주기 대규모 유작전을 24일부터 11월 6일 예술의 전당에서 갖는다. 부부의 차원을 넘는 유작전의 위치는 이번 추모사업을 위해 결성된 『강국진을 기리는 모임』에 참여한 홍익대 재학시절의 동료에서부터 제자에 이르는 60명의 명단에서도 확인된다.
『모임』의 대표는 한국화랑협회 권상능회장이며, 68년 행위예술 『투명풍선과 누드』이래 동료인 정강자와 제자화가 김선, 국민학교 동기 양병률 등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평소 어눌하고 말을 없었던 고인의 오지랍이 넓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고인은 시효을 넘겼던 60년대 추상 표현주의의 포화상태을 돌파하려했던 젋은 미술인『논꼴』『청년작가 연립전』등의 핵심 동인.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비닐 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한강변의 타살』등에 참여했고,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평면작업으로 돌아섰다. 30대 미술의 기수였던 그가 실험미술의 공격적인 장인『앙데팡당전』을 주도한 것도 이때.
유작전에는 이들 활동의 자료외에 평면 시리즈인 『역사의 빛』『가락』등이 대거 나온다. 출품작들은 너무도 다양해서 얼핏 일관성이 없어 보일 정도.
아내 황씨는 『일관성이 없다는 몰 이해를 걷고 고인의 실험작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대해 유작전을 꾸몄다. 굳이 5주기나 10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료가 모아지는 대로 전시를 갖었다』고 밝혔다.
고인의 10년 연하로 슬하에 자녀가 없었던 그녀는 현재 남편과 살았던 경기도 하남시의 양옥집에서 고인의 유품과 체위를 손끝하나 대지 않은 채 살고 있다. 남편사후에도 그의 그림자와 살고 있는 셈이다. 『저 물건들은 본래부터 그냥 그대로 있었던 것이고 남편 체취가 남아 있어야 내가 든든하다』는 것이 부박한 풍토와는 너무 대조적인 그의 말이다.
'사부의 정'이 꾸민 유작전
문화일보 1995.10.24
KUKJIN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