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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bject of my work springs up from the immanent mental imagery which exists at an endless depth, which is then materialized. My sentiments are desired symbol of my own internal abyss, and at the same time philosophical conviction manifested in my unique life. What is in fact more difficult than expressing objective external subjects is to express my life sentiments?

 

Such expressions of one’s sentiments that exist deep within are results of the strenuous process of exploiting my own unique characteristics. To do so is possible only if I face up to the spirituality in my own circumstances. As I face up to discrepancies of human, these become the subject of artistic expression as numerous symbols burst forth explosively from powerful lines, heated canvases and the world of anti-form, thereby constructing the meaning of the discrepancies. I want these to be done creatively, without fabrication, and through my new vision.

 

In order for this to happen, aesthetic consciousness comes necessary with no embellishment or ornamentals, only personally felt and expressed in my own terms. The mode of such deeds shall be something radically different from the ones of the past, a change that requires my own accord of outcome? which in turn comes from inevitable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and mode of expression. There must be a newly formed vision and art’s archetype. We need to look carefully at where aesthetic sense is being formed, and it needs to start happening on the ground of Korean culture. I believe that only a pure sense of art can enable expression of a pure subject. Giving various dispositions a blunt refusal, newly created spiritual climate and order form my basis of work ethics.

 

And the time is 1965, the point of life that a new climatic formative art should be created, discarding the old. This is my destiny as well as our task to be fulfilled. Achieving this would be possible only if we engage our thoughts into creating new thoughts. It is in no one’s ability to tell what the art is going to become in the future, which means effort to form the personal vision at present is crucial. My work has to be both the starting point of life and the point of stopover. I am formed and reformed as I create, and I want my creations to come from my mode of life.


Noncol Art, 1965

Artist Words

내 작품의 대상은 무한한 내재적 심상에서부터 출발하여 이것을 대상화 한다. 감정은 내면적 심연의 욕구적 소산이다. 이 감정은 나의 특유한 생활에서 온 신념이다. 나의 생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외적 대상의 표현보다 더욱 곤란하다.

나의 특유한 감정의 표현은 나의 개성을 발굴하는 성실한 나의 작업이다. 나의 특유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내 정신의 직시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나의 창조적인 힘으로 표현되기를 원한다. 새로운 비젼을 화면에 모색하여 여기서 나의 거짓 없는 표현 세계가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수식 없는 미의식을 가져야 하며 이것은 그저 느껴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회화에 대한 미련을 탈피하고 새로운 양식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필연적 미의식의 변모, 양식의 변화에서 오는 자의적 소산으로 이룩되어 질 것이다. 새로운 비젼의 형성, 예술의 전형의 창조가 이룩되어야만 한다. 가장 냉철히 우리들의 주의를 주시할 것에 우리들의 미의식이 형성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적인 풍토에서 일어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꾸밈없는 미의식을 가질 때 나는 순수한 대상을 표현하리라고 생각된다. 제 경향의 거부, 새로운 정신적풍토, 새로운 질서의 모색 이것이 나의 작품 태도이다.

 

1965년 우리들의 시점에 서서 우리의 젋은 미술은 낡은 정신적 자세를 탈피하여 우리들의 새로운 풍토적 조형을 창조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사명인 동시에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과거에 집착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모색 속에서 가능하다. 아무도 내일의 회화가 될지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비젼이 형성되도록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나의 작업이 나의 생활의 출발이며 나의 기착점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 그리는 가운데 형성되고, 나의 작품 전체가 나의 생활 속에 결정되어야 할 것을 바랄 뿐 이다.

 

『논꼴아트』, 1965

Work Ⅰ, 1964, Oil on canvas, 130x162cm, the 1st ‘Noncol’ exhibition (1965)

Words about my work

나의 작품 속의 말

KUKJI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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