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Last year,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I had an opportunity to hold a personal exhibition at Gram- bihler gallery and to partici-pate in ‘Salon de Realité Spiritualle’(established in 1945 by Jean Dubuffet to exhibit selected artists), both in Paris, and hold another personal exhibition in New York.

 

The trip also served as an opportunity to visit different galleries. Upon arrival at Orly airport in sleeting night before the break of dawn, I was met by an artist Shin Mun who led me into central Paris. Galleries there looked so different from ours in that they seemed much more serious and earnest in attitude, concentrating only on their own operations rather than being rooted in pointless formality.

 

Taking catalogue for an example, Parisians seemed to strain their nerved only on the art work itself, trying to look at gauge own work identities so as to repeatedly give self-confirmation that their works are strictly unique. Furthermore, galleries didn’t have such things as group exhibition, only those exhibiting artists 

 

that fit into the image and disposition of the gallery. Artists who have gone through enormous pain and perseverance on their front to realize what is theirs were being given chance to exhibit as their originalities have been fully established, even when lacking technicality.

 

No matter how well-established one’s technicality is, even a minuscule bit of similarity with other works can forfeit one’s competence and eligibility as an artist, not to mention denunciation at the door. We, on the other hand, take into account only few western news and articles or resorting to few glimpses of oriental thoughts, claiming positions in formative trend. The debate over whether over-standardized, stereotypical (or so-called collective-individual) operation is to be pursued was recently provoked, and such problematic system has been nurtured by the thought that the selective western-oriented trends should be accepted knowing none of the fundamentals.

 

This is the point where we should stop and think about what is at stake in pursuing such notions, especially when we have been alienated from the international cultural communities because of our lack of vision and creativity, and when the only ‘international’ exhibitions held in the country are at best low in quality. Artists only excessively want to participate and make names for them, looking enviously at some artists perched on meaningless, shortsighted fame. This is pity, and it needs to change. The most efficient way to complete the understanding and expression of oneself is to avoid the temptation of following trend of thoughts, only focusing on maintaining independence and contemplation-the attitude that fosters a great artist.

 

It can be said for sure that Parisians are far closer to this ideal. We are trying to move forward too quickly with not enough resources and maturity. We want to get rich and famous overnight. Shouldn’t we keep our love for artistic thinking for as long as we can, rather than resorting to competition-The deeds of the current era will never achieve our ideal if we carry on like this. It is therefore crucial that we realize we can be treated as artist only when we express what is ours.

 

Monthly art magazine, Hwarang, May 1979

Artist Words

3

지난해 나는 파리에 있는 그랑빌레 (Grambihler)화랑의 개인전과 그곳의 살롱 드 레알리떼 스삐리뚜엘르(Salon de Realite Spiriteulle; 1945년에 드뷔페가 처음으로 창립한 이후 현재까지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는 우수한 작가들을 선정하여 참가시킨다)의 참가와 뉴욕에서 개인전을 갖기 위하여 모처럼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겸하여 파리와 뉴욕의 미술관과 새로운 작품 활동을 찾아보며 여러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오롤리공항에 진눈개비 나리는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도착하여 문신 화백의 마중을 받으며 처음 딛는 파리 시내로 들어갔다. 파리의 여러 화랑에서의 갖가지 전람회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우리는 그에 비하여 외형적인 지나친 형식에 치중하기에 급급한데 대하여 착실히 자기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액자, 카탈로그는 거의 다 간소하게 차리고 오로지 작품 그 자체 만에 모든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전람회의 참관도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기보다도 자기 작품이 다른 작가의 모방이 되지 않도록 자기 확인에 더욱 노력하는 태도였다. 우리의 화랑같이 그룹전이란 있지도 않으며,각 화랑에서 자기 화랑의 성격에 맞는 작가 몇명을 초대하는 전시회가 우리나라의 그룹전 같은 것이다. 자기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무수한 시간을 인내와 고통 속에서 보내며 비로서 자기 표현이 될 때 발표하며 비록 그 작품이 기술적인 표현은 미숙하지만 자기만의 독자성이 확립되면 발표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표현의 기술이 완성되었을지라도 누구누구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요소가 있으면 면전에서 공박과 더불어 예술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반면에 우리들은 너무나 고통 없이 안일하게 외국 잡지나 소식 몇 마디 또는 동양 사상의 편린을 보고 유형과 유행에 휩쓸리는 태도는 지향되어야 하며 이러한 사고들이 근자에 논란의 대상이 된 획일적이고 무개성(일부는 집단 개성), 유형적인 작업소산의 온상이 되어 왔다고 생각되어 진다.

 

국제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고립이 되고 국제적인 안목의 미비로 우리는 국제전(여태까지의 국제전이란 대부분 하잘 것 없는 전시가 많았다.)에 대한 지나친 선망과 참가에 대한 과잉의욕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생각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국제전에 서로 내어보겠다고 아귀 다투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유행이나 사조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독자성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만이 누가 무엇이라 해도 초연한 자세로 자기 일을 하는 자세야 말로 가장 빨리 자기를 완성하는 길이며 이러한 태도야 말로 위대한 예술가를 만드는 자세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 태도를 가진 겸손하고 부드럽고 유순하고 꿋꿋한 자세를 가진 그쪽 사람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대체로 너무 조급하게 서둘러 가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다.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어야 하고 개인전 몇 번에 대가가 되어야 속이 풀리는 우리의 풍토는 속히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왜? 예술을 오랫동안 자기 곁에 두고 사랑하지 않고 하루 아침에 다 먹어 치우려는 식의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인지! 우리들은 유명한 작가의 흉내나 내는 복제판의 예술로서는 결코 국제 화단에서 얼굴도 내지 못하며 영원한 삼류작가를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자기 것을 표현하는 작가에게만 영원한 삶의 길인 예술가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화랑』, 1979.5

 

 

Kukjin Kang (center), at his solo exhibition of galerie Grambihler, Pairis, France, October, 1978

강국진(가운데), 파리 그랑빌레 화랑 개인전에서, 1978년 10월

 

 

Kukjin Kang, with the artist Kwan Nam in Paris, around 1979-1980

파리에서 강국진과 남관, 1979-1980년 경  

 

 

With solo exhibition at Galerie Grambihler as a momentum

그랑빌레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KUKJIN KA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