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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년대 말은 한국현대미술사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실험미술이 등장한 한국 실험미술의 맹아기였다. 해방 후 제도적 교육을 받은 젊은 작가들에 의해 제기된 이러한 경향들은 우선 과거에 비해 다양한 서구의 실험미술의 정보 유입에 기인한다. 당시 서구의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나 일본의 구타이, 네오다다이즘 활동 등 전위예술들에 대한 정보가 유입되어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의욕을 자극하였다. 다른 한편으론 급격한 경제성장에서 파생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젊은 작가들의 기성제도나 권위에 대한 태도들로부터 기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은 전 세계적으로 반전운동, 인종문제, 환경운동, 히피, 여성운동, 68학생 운동 등 사회적 격변기였다. 1960년대 앙포르멜이 주류적 흐름으로 편입되어 실험정신을 상실하고 제도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이러한 실험적 경향은 과거 매체중심적 작업들에 비해 그 폭과 관심영역이 크게 확장된 것이었다. 특히 회화나 조각이라는 전통적 영역으로 정의할 수 없는 오브제의 사용과 자신의 신체를 통한 해프닝의 출현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작업의 내용에 있어서도 종래의 조형적 차원의 문제들로부터 사회와 현실을 직접적으로 호흡하는 차원으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젊은 그룹 활동들로는 기하학적 평면작업을 시도했던 '오라진' 그룹과 다양한 오브제 작업을 펼쳤던 '무동인(無同人)' 그리고 다양한 현대적 매체와 비물질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사회적 발언을 꾀한 '신전(新展)'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은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에서 보듯 탈(脫)아포르멜적 경향을 가지는 것으로 당시의 실험적 경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실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문화적 미성숙과 몰이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회에서의 실험미술에 대한 경직성과 거부감이 매우 심한 것이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하거나 불온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로 인해 그것은 수용의 한계가 있어 이러한 움직임이 주류적 흐름으로 자리 잡을 수는 없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포스트모던 계열의 다양한 실험적 작업들의 모태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세 단체 중 행위예술적 성향을 가지며 상대적으로 사회적 발언이 강했던 '신전'의 경우 강국진, 정찬승, 양덕수, 정강자, 심선희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들의「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은 회원작가들이 비닐우산 주위를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부르며 돌다가 우산에 촛불을 꽂는 행위인데, 핵우산을 상징하는 비닐우산과 순수한 인간정신을 상징하는 촛불 행위를 통해 문명의 명암을 대비 결함시키며 사회개혁적 의미를 승화시키고자 하는 매우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신전' 동인 중 정강자는「키스미」,「살인자」등을 통해 미술계와 사회부조리 전반으로부터 탈출하여 여성해방을 갈망하는 의지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적 해프닝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투명풍선과 누드」(1968)는 이러한 의지를 담고 있다. 한 시간 반 동안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지속된 이 해프닝은 작가자신의 누드에 회원작가들과 관객들이 투명풍선을 불어 부착하도록 하였다. 재즈 음악과 현란한 무대조명이 어우러졌고,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이 누드에 부착된 풍선들을 터뜨린 뒤 작가의 퇴장으로 끝나게 된 이 해프닝은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제기하면서 가부장적 사고가 편만해 있던 당시의 사회 문화적 환경을 향하여 여성해방적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당시로선 여성의 누드를 작품의 문맥 속에 행위예술로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녀의「투명선과 누드」는 예술 영역의 확대는 물론, 투명풍선의 신비로움, 누드에 대한 성적 호기심 등을 절묘하게 결합한 형식을 통해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경직성과 허구적 시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젠더(gender)로서 여성의 문제와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해프닝으로 의미를 가진다.

현대미술의 맥 (34)

『문화예술』  2004.11

KUKJI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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