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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략) 과거에도 지역미술계는 전국에서 그 위치와 역할이 뚜렷했다. 1920년대 서양화를 수용할 때 있어 두드러진 역할을 했으며,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1세대 서양화가들이 지역에 많이 정착했다. 당시 활동했던 작가로는 이인성, 서동진, 박명조, 배명학 등이 있다. 1923년 개최된 대구 최초의 전시회인 대구미술전람회는 대구가 서양화단의 구심점이 되는데 큰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1960~1970년대에는 대구가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했다. 1977년 열린 제3회 대구현대미술제에는 당시 대구시민회관의 2백 평 전시장에 전국 작가 2백여 명이 작품 2백50여 점을 전시했는데 이러한 대규모 전람회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 행사는 지역 작가들이 결성한 대구현대작가협회가 중심이 돼 이뤄졌다. 당시 참여한 작가는 강국진, 김구림, 하종현, 우제길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지역 미술가들이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소재주의나 평면적 자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을 양산하기도 해 지역 미술의 성장을 늦춘 점도 있다고 한다. 이는 학벌·지연·장르 등 미술 외적인 문제에 얽매이는 구태의연함의 영향도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현재 대구지역에는 미술대학이 많아 인력이 풍부하고 또한 서양화 분야는 타지에 비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시립미술관의 건립이 늦추어지는 등 어려움도 많다. 광주의 경우, 비엔날레의 개최로 일반인들의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비엔날레는 광주가 새로운 미술, 국제적 미술을 경험하고 주도적인 행사를 만들어 가는 도시로 격상하는 데 한몫한 것이다. 광주 비엔날레의 성공, 부산 시립미술관 설립, 경주 선재미술관 의 활동 등은 대구에도 시립미술관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한다. 지역미술계의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재원확보와 그 활용방안 모색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술을 이해하는 우리의 안목을 키워야 한다. 박남희 교수(예술대 미술)는 “지역에서는 한 번만 봐도 이해하기 쉬운 사실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추상적인 그림들은 외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미술계는 과거에도 한국미술계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도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해 미술계를 발전시키고 아울러 이를 통해 지역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것 은 우리에게 달렸다. 시립미술관의 건립과 우리의 미술을 보는 시각 변화가 함께 이뤄질 때 대구미술계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이제는 변화를 통해 재도약할 때

경북대신문  2003.10.20

KUKJI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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