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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실험미술가 강국진의 삶과 예술’이란 제목으로 열린 학술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경남도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이 세미나는 경남도립미술관이 주최한 ‘강국진 회고전’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것이다. 정확한 타이틀은 ‘역사의 빛: 회화의 장벽을 넘어서’. 그러니까 이 전시회는 경남 진주 출신인 고 강국진(1939-1992)의 화업을 기리는 한편, 지역의 대표적인 미술기관인 경남도립미술관이 이 지역에 연고를 둔 작가를 조명하기 위한 시리즈물의 일환인 셈이다. 그러나 회고전 성격을 띤, 회화 중심의 대규모 전시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미나에서는 회화에 대한 조명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일말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세미나는 모두 3부로 구성되었는데, 참고 삼아 밝혀두면, 1) 강국진의 삶을 중심으로 한 예술 개관(이성석: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2)강국진: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힘(김미경: 미술사가, 강남대 교수), 3) 강국진의 오브제와 해프닝의 비평적 의의(필자) 등등이다.

이 세미나의 발제문은 이 책에 특집으로 재수록 되어 있기 때문에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회화에 대한 약간의 스케치가 필요할 듯싶다. 그 이유는 흔히 행위예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고인이지만, 그의 화력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해프닝보다는 회화였기 때문이다. 비평적 엄밀성을 가지고 말하자면, 그의 회화는 이제 서서히 연구해 가야 할 비평의 대상인 것이다. 그것은 통시적 혹은 공시적으로 크로스 체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과대평가되었다면 군살을 빼야 할 것이고, 만일 과소평가되었다면 정당하게 원위치 해야 마땅할 사안이다. 그래서 작가는 죽어서도 고독한 존재란 말이 나온다.

생전에 화려하게 장정된 화집을 여러 권 출판하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라고 한다면, 강국진은 사후에 단 한 권의 화집이 발행되었다. 미망인에 의해 발행된 이 화집은 해프닝을 비롯하여 오브제 및 설치 작품, 그리고 회화와 판화를 망라한 강국진 예술에 관한 최초의 종합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록된 글의 대부분이 친지 및 지인들이 쓴 회고의 글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미술사나 비평을 위한 자료집으로서는 충분치 못한 일면이 있다. 그나마 이 화집에는 전문비평가에 의한 세 편의 평문이 실려 있어서 강국진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데, 수록된 비평문은 다음과 같다. 1) 초기 강국진의 작가적 면모와 활동(1965-1974): 오광수, 2)80-90년대의 강국진, 마감기의 예술혼: 김복영, 3) 강국진을 추모함: 유준상. 이 세 글 중에서 본격적으로 회화를 다룬 것은 두 번째인 김복영의 글이다.

화집에 수록된 작품의 연대를 토대로 할 때, 선과 점을 토대로 한 강국진의 회화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75년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3년의 골판지 구성 작품과 만나게 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발상의 뿌리를 1965년, ‘논꼴’ 동인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작가 노트 속의 기술이 바로 그것.

“내 작품의 대상은 무한한 내재적 심경에서 출발한다. 감정은 내면적 필연의 욕구적 소산이다. 나의 특유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내 정신의 직시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되고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업노트 속의 일부 구절을 참고할 때, 선이나 기호에 대한 발상의 맹아가 1965년 무렵에 이미 싹트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은 현존하는 몇 점의 추상화로 밝혀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자칫하면 견강부회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회화 중심의 ‘논꼴’ 활동이 있던 1965년과 해프닝 및 오브제 설치작업에 조력하던 1967-1973년, 그리고 다시 선과 점 중심의 작업이 이루어지던 1975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여기서 한국 현대미술사를 살펴볼 때 1970년대 초 중반은 이미 선과 점을 테마로 한 추상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다. 그렇다면 강국진 회화의 미적 독창성은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번 회고전을 둘러보면서 1970년 중반, 강국진의 초기 선과 점 작업에서 수작을 몇 점 발견했다. 미망인의 귀 뜸에 의하면 그가 남긴 작품은 17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그에 대한 후속 연구가 아쉬운 시점이다.

강국진 회화의 뿌리에 대하여

미술평단  2007. 여름

KUKJI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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