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gazine

& Publication

때는 지난 10월 17일. 오후 4시. 제2 한강교 다리 밑 (100미터 지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 진 것이다. 어느새 냄새를 맡은 언론기관의 차들이 강둑에 5, 6대 늘어섰다. 누가 자살이라도 했는가? 그러나 이건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란다. 그것도 하나가 죽는 것이 아니고 자그마치 5명이 타살되리라는 이야기다. 타살될 사람의 이름은 좀 아이러니컬하고 길다. 들어본다면 ‘문화사기꾼’, ‘문화실명자’, ‘문화기피자’, ‘문화 부정축재자’, ‘문화 보따리장사’.
과연 타살해도 될만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들을 모의로 죽인단다. 죽여서 모래사장에 묻기까지 한단다. 아연할 노릇은 이런 일련의 행위가 곧 예술이란다. 소위 행동예술. 이름하여 ‘해프닝 쇼’란다. 지난번엔 발가벗어 고무풍선을 붙이는 ‘해프닝 쇼’를 했는데 이번엔 벗지 않아서 좀 싱겁다는 사람도 있다. 이 작품(?)을 위해 한국 청년작가 연립회원 3명이 소위 각본을 공동으로 썼단다. 그들은 홍익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들. 이날의 작자는 강국진을 위시, 정강자, 정찬승씨.
한마디로 말해서 모두 죽이고 싶은 현실을 고발한다는 대의명분이 이 행동예술의 밑바닥에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3명의 미술학도들이 공동 제작한 <한강변의 타살>을 처음부터 각본 따라 이야기해보자.
바켓스 3개를 2미터 간격으로 나란히 놓은 후 각자(3인)가 삽으로 자기 몸이 들어갈 만큼 구덩이를 판다. 그것이 완료되었을 때 그들은 바켓스를 들고 강가로 뛰어가서 물을 퍼온다. 바켓스 속에 물권총 (장난감) 3개씩 넣어두고 이들은 미련 없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보고 있던 관중들이 이들을 묻어준 후 목만 남은 이들에게 물총세례와 바켓스 물을 사정없이 퍼부어댄다. 이날 한강 다리 밑은 찬바람이 씽씽 불었고 관중도 바들바들 떨었다. (관중이라야 통틀어 50여명). 모래 속에 들어가서 온통 물벼락을 맞고 났으니 이들의 표정은 가히 짐작이 간다. 퍼렇게 질려버린다. 관중들이 구덩이를 파주면 나와서 비닐 천을 풀고 비닐 천의 가운데 부분을 목에 들어갈 만큼 가위로 자른 다음 목에 걸쳐 입는다. 그들은 다시 바켓스를 들고 강가로 뛰어가 물을 떠온 후 서로가 고발장을 쓴다. 조금 전에 말한 타살의 대상자들을 뺑키로 쓰는 것이다. ‘문화기피자’ 등등…
그것이 끝나면 그들은 관객에게 메모지와 연필을 나눠준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메모지에 적으라는 것이다. 그들은 바켓스에 휘발유를 넣은 다음 비닐 천을 벗어 태워나가며 관중들의 고발장을 접수한다. 크게 낭독하여 불에 태우는 것이다. 추워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소위 예술가 타입의 ‘비틀즈’머리들이 고발장을 이들에게 건넨다. 관객이 준 메모내용을 소개한다면 ‘무냐, 유냐’, ‘다들 몸쓸 사람’, ‘예술은 무모하다’, ‘사이비 몸부림’, ‘예술이 타락했다’, ‘예수님이 술을 마신 격’, ‘사람은 생에…’ 등등… 그런데 정강자양이 갑자기 “하하”하고 웃는다. 고발장에 써진 문귀가 기가 찬 모양, 그러나 낭독 안 할 수는 없다. ‘감기에는 팜피린’ 관객이 한바탕 웃었다. 소위 예술작업에 농을 걸어온 누군가가 얄미운 듯 정양이 그 쪽에 눈을 흘긴다. ‘감기’말이 났으니 말인데 이들 세 사람은 감기라도 걸릴 것처럼 중노동(?)을 해냈다. 느끼는 사항이 모두 죽이고 싶은 심정이라는, 그 데모요. 3자 공동작이라는 <한강변의 타살>은 이렇게 하여 40여분 만에 끝났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은 아랫목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투덜거리며 잽싸게 강둑으로 오르고 있었다.

‘문화보따리장사’, ‘문화사기꾼’, ‘문화기피자’ 등등의 이름을 흰 뺑키로 써서 불에 태움으로써 소위 <한강변의 타살>은 절정에 달한다. 3명의 청년작가 연립회원이 공동 제작한 행동예술이라는 것.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들 큰 고역을 치룬다고 동정했다. 추운 날씨에 흙 속에 들어가서 바켓스채 한바탕 물세례를 받았으니. 모두 죽이고 싶은 현실을 고발한다는 작업이 결국 쉬운 노릇은 아닐 테지만.

관객이 건네준 고발장을 태우고 그것이 끝나면 삽질을 하여 불구덩을 메운다. 이리하여 40여분간의 쇼는 끝나고 관객은 투덜대며 강둑에 올랐다.

예술이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이야. 그들은 찬 강변에서 물을 떠와 덜덜 떨면서 총세례를 받고 물세례를 받았다. 이날 강변은 몹시 추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스스로 판 무덤으로 들어가는 정강자양. 이 아가씨는 지난번 ‘해프닝 쇼’에서 미련 없이 옷을 벗었던 장본인.

<한강변의 타살>이라는 해프닝 쇼, PHOTO 시사-THE SISA GRAPHIC

시사통신사  1968.11

KUKJIN KA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