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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진씨가 평면작업에 의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입체와 판화의 장르에서 두 번 개인전을 가졌었다. 십여 년 전 나는 처음 그를 알게 되었으며 당시의 그는 홍대 동문으로 구성된 ‘논꼴’의 한 멤버였다. 그래서 오늘까지 나는 그의 변모를 여러 면에서 지켜보게 되었으며 이러한 인과가 이 글을 쓰게 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과를 거슬러 올라가서 현재까지의 그의 자기표현을 뒤쫓아 보려는 게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이겠으며 결국 이것은 나의 자기표현이 되고 마는 셈이다. 우리는 따로 따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따로 따로의 자아현시의 필연적인 욕구는 그것이 성난 것이건 웃는 것이건 간에 우리의 문명을 틀 잡아 나가리라는 데서 우리는 따로 따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의 경우 캔버스 위에 무진장이다 싶이 그어 넣는 선맥의 흔적이라면 나의 경우는 이 글인 이 종이 위에 찍힌 무수한 활자이어서 우리는 벌서 그 낱낱의 생김새나 모양 또는 꼴에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고 훨씬 멀리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알만큼 어른으로 성숙했다고 감히 자부해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우리는 자부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짓이기에 결코 건방지지는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꼬락서니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서는 거기에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조명하며 그 꼬락서니의 형과 색과 동을 팔짱을 끼며 의젓하게 책상다리를 꼬며 바라보면서 이렇게 웃고 저렇게 성낼 만큼 유치하거나 철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들은 너 나 없이 어른이며 강국진씨의 선맥처럼 딱 오로지 한번만 이 세상에 살다 꺼져버리는 사람들임을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
사람의 자취란 결국 임의로 들어올린 곡괭이를 힘껏 땅 위에 내리찍어서 생기는 자취를 말하는 것일 게다. 이 경우 들어올리는 동작의 폼을 자로 재고, 사진으로 찍고, 글로 기록함,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이렇고 저렇고 따지지 않더라도 땅은 패인 자취를 어떻든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자취야말로 어렵게 말해서 역사라는 것일 테고 그것은 임의로 들어올린 곡괭이를 수없이 내리찍는 반복으로 지속된다. 곡괭이를 들어올리기 전에 이렇고 저런 자취로 찍어야겠다던가, 들어올리는 폼을 이렇고 저렇게 잡아야만겠다 던가, 꼭 1977번을 찍어서 자취로 만들어보고 싶다던가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직까지는 없었다. 여기서 설마 하는 사람이 있거든 실제로 들에 나가서 곡괭이 질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아라. 얘, 곡괭이 질을 하는 소감을 좀…. 꼭 몇 번을 어떤 폼으로 무슨 이유 때문에 왜 곡괭이 질을 하시는지? 필경 별 미친놈 다 봤다고 그 역사의 주인공은 고개를 외어 틀게 분명하다. 그의 조상 대대로부터 그의 후손 대대까지 그렇게 곡괭이 질을 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원시인과 다를 바 없는 야만인일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문명이 하나의 거대한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점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야만이 사실(이른바 리얼리티라고 씨부렁거린다나……)일지도 모른다는.
주 - 참고로 강국진씨는 이러한 자취를 무상행위의 반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강국진 개인전에 붙여, 유준상
그로리치 화랑 서울, 1977.04.25-30
KUKJIN KANG